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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싶다 그야말로 잠과의 전쟁이다. 나아지겠지 나아지겠지 했지만 잠을 푹 못 잔 지 이주일이 훨씬 넘었다. 평소 잘 자던 딸아이가 밤중에 네 다섯 번은 깨고 낮잠도 부쩍 줄어들어버렸다. 덕분에 내 수면의 질과 양은 나빠질대로 나빠졌고 요즘 매일같이 짜증스럽게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아침을 맞이하기 보다는 밤 내내 비몽사몽 어설프게 자다 깨다 하다 보면 아침이다. 잠을 자도 도무지 잔 것 같지가 않은 나날이었다. 그래도 낮 동안은 사랑스러워 아기 얼굴이 침 범벅이 되도록 쪽쪽 거리고 품에 끼고 지내지만 밤이 되면 몇 번이나 일어나 울면서 젖을 찾는 딸이 짜증스럽고 무서울 정도다. 이건 전쟁 포로도 아니고 이런 잠고문이 없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젖 달라고 품으로 돌격(?)해 오는 아이는 영락없는 고문관이다. 도저.. 더보기
자유와 함께 춤을 자유다! 자유다! 아이도 업지 않고 가방도 들지 않은 내 몸은 마치 끈 떨어진 풍선처럼 두둥실 뜰 것 같다. 발걸음이 정말 가볍다. 동시에 팬티 없이 바지를 입은 양 뭔가 빠지고 허전한 느낌도 든다. 이렇게 오롯이 나 혼자 쇼핑몰에 온 지가 언제였는지. 나와 함께 시부모님을 뵈러 가는 대신 남편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망설여졌지만 시댁에서 5 분 거리인 쇼핑몰에서 기다리면서 혼자만의 시간도 보내고 혹 아이가 너무 울면 금방 올 수 있는 거리이니 어떻냐는 남편의 제의가 나쁘진 않았다. 내가 아직도 시부모님을 그리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남편도 더 이상 화해나 만남을 억지로 시키고 싶지는 않아 했다. (하긴 시어머니 목소리조차 듣기 싫다고 했으니) 기다리는 동안 뭘 할까 생각할 .. 더보기
시모와 계모 이곳의 구정은 한국처럼 휴일은 아니지만 아시안계가 많아 미국 본토 보다는 구정을 챙기는 편이다. 그래서 구정에도(평일이라도) 많은 레스토랑이나 모임 장소가 구정을 축하하는 친구와 친척들로 붐빈다. 그러나 나는 시부모님을 찾아가 뵙지 않았다. 작년 땡스기빙 이후로 크리스마스는 물론이고 신정에도 인사를 가지 않았다. 작년 땡스기빙 다음 날 시어머니가 남편과 통화중 F로 시작하는 욕까지 하시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 것을 듣고 (스피커폰이 켜져 있어서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몸서리 친 것도 있지만 손녀를 보여주지 않는다고 큰시아버지께 나에 대해 불만 불평을 터뜨린 것을 남편 사촌이 귀뜸해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남편은 큰애를 데리고 명절때마다 주말에 한 번은 꼬박꼬박 얼굴을 내밀었고 지금도 그러.. 더보기
낙원의 두 얼굴 슈퍼에 가려고 딸아이와 집을 나서는데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코를 찌르는 오줌 냄새와 함께 너덜너덜 떨어진 옷을 입은 한 흑인 남자가 갑자기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집 모퉁이 벽에 너무 가까이 앉아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았고 그 남자의 모습은 노숙자의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에 등골이 오싹했다. 몇 달전 공원의 화장실을 쓰려던 관광객이 아무런 이유없이 노숙자에게 폭행을 당해 입원한 뉴스가 뇌리를 스쳤다. 그 전에는 일광욕을 즐기던 주민(여자)이 잠깐 쳐다봤다는 이유로 노숙자에게 얼굴과 머리를 구타 당했다는 뉴스도 났었다. 이곳은 거의 일년내내 수영이 가능할 정도로 기후가 온후하다, 아니, 덥다. 정말이지 티셔츠 한 장으로 한 해를 지낼 수 있다. 그에 반해 물가는 내가 살았던 오사카나 미국 본토보.. 더보기
한국인 엄마 오늘은 딸아이의 첫 체조 교실이 있는 날이었다. 좋은 말로 하면 체조 교실이지만 키즈카페 같은 곳이다. 단지 강사가 있어서 이렇게 저렇게 마사지를 해줘라 아이를 들어올려라 내려라 하며 약 이십분 정도 수업(설명)을 해준다. 그리고 거의 아이들을 미끄럼틀이나 그네를 태우며 놀린다. 어쨌든 걷기 시작한 이후로 활동량도 늘어난 딸아이한테 체조 교실은 좋은 운동이 될 것 같았다. 강사는 백인과 흑인 여성 두 명이었는데 백인 강사를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던 딸아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흑인을 봐서인지 보자마자 울어댔다. 어찌나 크게 우는지 몸이 울릴 정도로 크게 틀어댄 비지엠이 잘 안들렸다. 낯설어서 그렇다는 (백인 강사도 처음 봤는데 괜찮았다) 변명도 못 하겠고 참 난감했다. 교실은 손이 차가워질 정도로 에어컨이 빵.. 더보기
인자요산 멍자요수(仁者樂山멍者樂水) 어렸을 때 살던 동네는 산이 바로 뒤에 있어 주말이 되면 가족이서 등산을 다녔다. 산길 가장자리에 흘러 내려오는 개울이나 계곡에서 가재나 게를 잡는 것도 재미있었고 이빨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약수물로 목을 축이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였다. 여름에는 사촌들과 캠핑을 하며 매미나 하늘소를 잡으러 이 나무 저 나무 찾아다니며 신나게 놀았다. 산은 놀이터와 다름없었고 자연스레 산이 좋았다. 이후에 중학교 한문 시간에 사자성어 ‘인자요산’을 배우며 나는 ‘인자하고 어진 사람’ 이라고(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바다가 좋다. 참으로 좋다. 지금 사는 집에 이사한 후로 매일 빠짐없이 하는 일 중에 하나가 아이와 산책 겸 집에서 가까운 해변에 나가는 것이다. 자연의 치유력이라고 할까. 시원하게 펼쳐진 파란 .. 더보기
나의 여동생 여동생한테서 소포가 왔다. 110센티미터인 큰애가 선 채로 두 명이나 들어갈 정도로 큰 소포였다. 각종 건어물, 홍삼액, 큰애와 아기 과자, 여러가지 장난감, 내 화장품, 아이들 옷가지 그리고 큰애와 작은애의 색동 저고리가 들어 있었다. 아쉽게도 여러종류 보낸 (남편이 좋아하는) 라면은 세관에 걸려 파기되었다는 서류도 들어있었다(미국은 각종 육류가 들어간 식품은 반입이 안 된다) 그리고 익숙한 동생의 글씨가 적힌 카드가 보였다. 내 글씨는 지렁이처럼 꼬불거리고 크기도 일률적이지 못한 것에 비해 여동생은 촘촘하고 또박또박 쓴 정사각형의 귀여운 글씨체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보고싶은 조카들에게’ 그리고 나에게는 ‘사랑하는 똥땡언냐’라고 시작하는 글로 써보낸 카드는 무엇보다 반가왔다. 여동생도 막 돌을 지난 .. 더보기
딸아이가 걸었다 2019년 1월7일 월요일, 딸아이가 드디어 걸음마를 시작했다. 지난 주부터 아무것도 잡지 않고도 스스로 꽤 오랫동안 서있는다고 생각했는데 오늘(7일) 큰애가 춤을 추는 것을 보던 둘째가 냅다 두 세 걸음정도 걸었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무너지듯, 넘어지듯 몇 발짝을 띄워냈다. 남편과 나는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너무 크게 소리를 지른 탓인지 아이는 깜짝 놀라 울먹거렸다. 큰애는 돌이 지나고 13개월이 되어 겨우 걸었는데 둘째는11개월에 걷기 시작했다. 눈치도 훨씬 빠르다. 아직 한 살이 채 안 되었지만 내가 무표정이거나 화가 난 걸 보면 그 귀여운 보조개가 쏙 들어가는 웃음을 지어준다. 딸아이가 씽긋 웃어주면 나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도 버터처럼 녹아내려 무장해제가 된다. 큰애와 비교하면 여러모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