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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와 현정이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훌쩍 다가왔다. 내 생일은 크리스마스이다. 하지만 서른이 넘어서부터는 크리스마스도 내 생일도 그다지 기다려지지도, 감흥도 없어졌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어렸을 때는 일년중 제일 기다려지는 날이 내 생일이자 크리스마스였다. 비록 생일 겸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더라도 온 세상이 즐거워하는 그 날이 참으로 좋았다.

그런데 그런 특별한 날이 제일 비참한 날이 된 적이 있다.

현정이도 크리스마스가 생일이라고 했다.
같은 반이었던 현정이는 집이 같은 방향이라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집에서 놀다가곤 했다. 현정이의 집안 형편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셨는지 안 계셨고 어머니께서는 노상에서 과일을 파셨다. 현정이 어머니께서는 까만 동그란 테에 두꺼운 렌즈의 안경을 쓰고 계셨던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남아있다. 현정이는 항상 혼자였다. 오빠가 있다고 했는데 거의 집에 없었던 것 같다.
우리 엄마도 현정이 어머니한테서 과일을 산 적도 있고 해서 가정 형편을 알고 계시기에 현정이가 놀러오면 식사를 챙겨주시곤 했다.
현정이는 나와 그다지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나를 좋아해주었고 우리집에 오기를 참 좋아했다. 당시 대여섯 살이었던 내 남동생을 귀여워했는데 무는 버릇이 있던 남동생에게 손가락에 피가 날 만큼 물려서 엉엉 울던 모습이 떠오른다. ( 그 날 남동생은 엄마한테 호되게 맞았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자 나는 친한 친구들 몇몇을 생일에 초대했다. 현정이도 초대했는데 “나도 크리스마스가 생일이야” 라는 것이었다. 나만 특별한 날 태어났다고 생각했는데 현정이도 같은 날에 태어났다니...나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마치 내가 특별히 여기는 옷과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마주친 느낌이었다.
엄마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그럼 같이 생일을 축하하면 어떨까”하셨다. 나만의 특별한 생일인데, 신나는 크리스마스이자 내 생일을 무슨 합동 결혼식도 아니고 같이 지내자니요?! 싫다고 했지만 엄마는 “촛불만 같이 불면 될 것을 못되게 굴지마”라고 하셨다.
내 생일이 되었고 현정이도 왔다. 현정이 얼굴을 보니 왠지 억울하고 화가 났다. 참 매정하게도 그 애 얼굴에 대고 “너네 집에 가” 라고 했다. 그 모습을 엄마가 보셨고 바로 등짝 스매시를 날리셨다. 얼마나 심하게 때리셨는지 등에 불이 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눈물이 터졌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집을 나가 가까운 상가 안의 계단에서 엉엉 울었다. 아무도 날 찾으러 오지 않았다. 울다 지쳐 집으로 돌아오니 다 돌아 가고 없었다. 엄마는 저녁 준비를 하고 계셨고 아무 말이 없으셨다.
그 때 이후로 현정이랑 놀지 않았다. 그 애랑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이 없다.

현정이도 곧 생일이겠지. 그 때 참 못되게 굴던 날 용서해주길. 어리석고 참 이기적이었던 나를.
“생일 축하해, 그리고 따뜻한 크리스마스 보내길 바라 현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