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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동생

여동생한테서 소포가 왔다.

110센티미터인 큰애가 선 채로 두 명이나 들어갈 정도로 큰 소포였다. 각종 건어물, 홍삼액, 큰애와 아기 과자, 여러가지 장난감, 내 화장품, 아이들 옷가지 그리고 큰애와 작은애의 색동 저고리가 들어 있었다. 아쉽게도 여러종류 보낸 (남편이 좋아하는) 라면은 세관에 걸려 파기되었다는 서류도 들어있었다(미국은 각종 육류가 들어간 식품은 반입이 안 된다) 그리고 익숙한 동생의 글씨가 적힌 카드가 보였다.
내 글씨는 지렁이처럼 꼬불거리고 크기도 일률적이지 못한 것에 비해 여동생은 촘촘하고 또박또박 쓴 정사각형의 귀여운 글씨체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보고싶은 조카들에게’ 그리고 나에게는 ‘사랑하는 똥땡언냐’라고 시작하는 글로 써보낸 카드는 무엇보다 반가왔다.
여동생도 막 돌을 지난 아기를 혼자서 돌보느라 피곤하고 바쁠텐데 이것저것 우리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그것도 대용량으로 보내줘서 미안하고도 정말 고마웠다.

아마 세상 대부분의 자매들은 사이가 좋을거라 생각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여동생은 그 이상이다. 존경한다 그리고 항상 빚을 지고 있는 기분이다.
여동생은 지금 내 인생을 있게 해주었다.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마음/신체의 안정과 행복은 여동생이 없이는 있을 수 없었다. 22년전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 간 이후로 누구보다 날 이해해주고 동거동락한 것이 여동생이었다. 일본으로 떠나버린 나 대신 부모님 식당을 도우며 고생한 것도 여동생이며 5년 전 일본에서 큰애를 출산했을 때 바로 다음날 미국에서 날아와 준 것도 여동생이었다. 내 해산구완을 위해 좋은 직장마저 그만두고 와주었다. 석 달동안 정성으로 아기를 돌보고 밥 빨래 살림을 해주었다. 매일 동생과 이것저것 얘기하다 보면 하루 하루가 금방 갔고 아이도 귀엽게만 보였다. (덕분에 동생이 가고나서 멘붕이 왔다)

그렇게 사이가 좋았던 동생이지만 몇 년 동안 말 한마디도 안 할 정도로 사이가 나빴던 적이 있다.
우리가족 중 유일하게 동생만 교회를 다녔는데 어느 시점부터 강압에 가까울 정도로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종말이 가까우니 하나님을 믿고 구원 받으라’는 등 대화할 때마다 하나님을 믿고 교회에 나갈 것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에서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나는 내 상황의 이해와 동감은 커녕 성경에 적힌 말로 나를 나쁘게 매도하는 듯한 여동생의 말에 깊히 상처를 입었고 급기야 “너는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까지 하며 멀리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는 강요는 좀 덜 해졌지만 해산구완을 위해 와준 3개월 동안에도 새벽 3시 반이면 반드시 일어나 기도를 하고 첫 차를 타고 두 시간 이상 걸리는 한국 교회를 매일 빠짐없이 나갔다. 그 부지런함과 신실함에 나도 남편도 혀를 내둘렀고 동생과몇 번 같이 교회에 나가기도 했다.
그러던 여동생이 3년 전 결혼을 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삼십대 중반이 되어서도 결혼 생각은 커녕 입버릇처럼 ‘하나님께 인생을 바쳤다’라면서 캄보디아로 선교를 가던 여동생이었기에 어느날 갑자기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하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동생이 다니던 샌프란시스코의 한 교회에서 소개를 해줬다 했다. 사진상으로 보니 키도 크고 준수한 외모의 남성이었다. 게다가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여동생이 바라고 바라던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 했다. 엄마 아빠는 내심 의심쩍어 하시면서도 결혼 안/못 할 줄 알았던 과년한 작은 딸이 좋은 사람과 결혼한다니 진심으로 기뻐하셨다. 반면 나는 걱정 근심이 태산이었다. ‘하나님 밖에/세상물정 모르는 노처녀’인 여동생의 미국 시민권을 노린 사기 결혼이 아닐까 하며 뒷조사를 해야 한다는 둥 야단법썩을 떨었다. (마침 한국으로 영어를 가르치러 갔던 여동생은 스폰서를 해준다던 영어 학교에 사기를 당해 미국으로 돌아오려던 참이었다) 우여곡절 우리 온가족과 한국의 친척들이 참석한 가운데 여동생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뤄졌고 어여쁜 여자아이도 태어났다.

지금도 여동생한테서 온 카드나 편지에는 ‘하나님을 믿고 축복 받기를’이라는 문구가 한결같이 쓰여있다. 그리고 기회가 될 때마다 “언니를 정말 사랑하니까 몇 번이고 말하는 거야, 다른 사람이라면 벌써 포기했어. 언니가 교회 갈 때까지 기도할거야.” 라며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얘기한다(그러면 나는 여전히 “으,,응”하며 넘겨버린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져도 동생의 삶은 변함없이 하나님 중심이다. 내가 아는 한 여동생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이며 흔들림이 없다. 그래서일까, 여동생은 강해 보인다. 여유로워 보이고 평온해 보인다.

나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동생처럼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동생과 교회에도 나가보고 수업을 듣기도 했지만 무슨 까닭인지 온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물론 신의 존재를 믿지만 교회에 나가야 하는 필요성이나 절실함을 못 느끼겠다. 그렇지만 동생의 깊은 사랑에 행복하고 항상 감사하다.
나와 정말 다르지만 내 인생에 가장 고맙고 소중한 사람중의 한 사람이 여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