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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요산 멍자요수(仁者樂山멍者樂水)

어렸을 때 살던 동네는 산이 바로 뒤에 있어 주말이 되면 가족이서 등산을 다녔다. 산길 가장자리에 흘러 내려오는 개울이나 계곡에서 가재나 게를 잡는 것도 재미있었고 이빨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약수물로 목을 축이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였다. 여름에는 사촌들과 캠핑을 하며 매미나 하늘소를 잡으러 이 나무 저 나무 찾아다니며 신나게 놀았다. 산은 놀이터와 다름없었고 자연스레 산이 좋았다.
이후에 중학교 한문 시간에 사자성어 ‘인자요산’을 배우며 나는 ‘인자하고 어진 사람’ 이라고(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바다가 좋다. 참으로 좋다.
지금 사는 집에 이사한 후로 매일 빠짐없이 하는 일 중에 하나가 아이와 산책 겸 집에서 가까운 해변에 나가는 것이다.
자연의 치유력이라고 할까. 시원하게 펼쳐진 파란 바다를 쳐다보며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해진다. 골치 아픈 일이 해결되지는 않아도 한없이 펼쳐진 바다를 멍하니 보고 있으면 뭔가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그 사이 딸아이는 모래를 주워 먹고 있거나 기저귀가 바닷물에 다 젖어버리는 단점이 있다)
아마도 멍 때리기 좋아하는 사람은 바다도 좋아하지 않을까. 잔잔히 끊임없이 부딪쳐 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시시각각 색깔을 바꾸는 바다에 마음이 비워지는 느낌이 좋아 매일 바다로 나가고 싶어진다. 오늘은 구름이 많이 낀 하늘이었지만 그 사이로 은색의 햇빛이 바다를 비추자 내 마음은 뭔가 설레고 기쁜 느낌으로 가득 찼다.

내가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많은 서퍼들이 바다로 들어가거나 바다에서 돌아온다.
나는 인자한 사람도 지혜로운 사람도 못 되지만 그저 이렇게, 멍하게, 바라보며 듣는 바다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