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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와 계모

이곳의 구정은 한국처럼 휴일은 아니지만 아시안계가 많아 미국 본토 보다는 구정을 챙기는 편이다. 그래서 구정에도(평일이라도) 많은 레스토랑이나 모임 장소가 구정을 축하하는 친구와 친척들로 붐빈다.

그러나 나는 시부모님을 찾아가 뵙지 않았다. 작년 땡스기빙 이후로 크리스마스는 물론이고 신정에도 인사를 가지 않았다. 작년 땡스기빙 다음 날 시어머니가 남편과 통화중 F로 시작하는 욕까지 하시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 것을 듣고 (스피커폰이 켜져 있어서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몸서리 친 것도 있지만 손녀를 보여주지 않는다고 큰시아버지께 나에 대해 불만 불평을 터뜨린 것을 남편 사촌이 귀뜸해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남편은 큰애를 데리고 명절때마다 주말에 한 번은 꼬박꼬박 얼굴을 내밀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지금 나에게 시부모님이란 내 목과 겨드랑이에 난 쥐젖같은 존재다. 생각하기 싫고 잊고 싶어도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머리카락이나 브래지어에 엉키거나 걸려서 따갑고 쓰린 그런 존재.
시부모님이 딸아이를 못 본지 두 달이 넘었다. 의도적으로 딸아이를 보여드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합가 때부터 아이가 울면 패닉 상태가 되셔서 한 시간도 봐주시질 못했다. 아이 아빠도 아이를 잘 못 보는 터라 나 없이 딸아이를 보낸다는 게 못미더웠다. 어쨌든 그 사이 딸아이는 걷고 말도 몇마디 하게 되었다. 남편이 사진이나 동영상을 매일같이 보내주는 터라 시부모님도 알고 계시겠지만 아무래도 실제로 보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시부모님을 뵐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아니, 시어머니의 목소리조차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하물며 얼굴을 보며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아니 얼굴 표정은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남편이 구정도 되고 하였으니 다 함께 모여 식사를 하자고 한다. 내 마음은 아직도 불편하기만 한데 애처롭게 부탁하는 남편을 보니 갈등이 되었다. 이 일을 친정부모님께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시비를 떠나 며느리로서 당연히 먼저 인사를 드리러 가야지 하고 화를 내셨고 엄마는 애교를 떨며 둥글둥글 잘(어떻게 잘요?!!)하라 하신다. 그럼 나와 같은 며느리 입장인 여동생은 어떨까하고 물어보니 동생은 나 자신을 위해 먼저 시어머니께 먼저 손을 내밀라한다. (Forgive them but do not forget) 친정부모님도 동생도 내가 시댁과 되도록이면 좋은 관계를 가졌으면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남편의 은사님과 사모님을 뵈었다. 남편과 두 분은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남편이 일본에서 일하게 된 계기를 주신 분들이기도 하다. 두 분은 이미 70대에 들어셨지만 아직도 일본과 미국의 대학에서 가르치시며 전세계의 학회에 나가시는 등 아주 활동적이시며 남편과 나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주신다. 이야기를 하다 시어머니 이야기가 나와 내 처지를 한탄(?)하니 사모님께서 불쑥 한마디 하셨다.
“그래도 자네는 시어머니 한 분이지만 나는 여자 셋한테 미움을 받는 계모라네.”
남편의 은사님은 사모님과 재혼이셨고 전 부인과의 사이에 두 따님을 두고 계셨다. 초혼이셨던 사모님은 의붓딸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정말이지 ‘피가 나도록’ 노력하셨으나 당시 친엄마랑 살던 틴에이지 두 딸들은 노골적으로 사모님께 적대심을 보였고 은사님의 전 부인은 친척들에게 나쁜 유언비어를 퍼뜨려 친척 생일 파티나 가족 모임에 가면 이유 모를 이상한 시선을 받아야 했다 한다. (그러나 진실은 전 부인이 바람을 피웠고 게다가 이혼을요구했다 한다) 어쨌든 지금도 그 세 모녀와 썩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은사님의 큰 따님과 그 손녀들과는 정기적으로 만나며 자주 연락을 주고 받는다고 했다. 그러시면서 한마디 해주셨다.
“지금 자네가 처한 상황이 힘들게 느껴지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바뀔 수도 있으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길 바라네, 그리고 가족 사이라도 자네 보다 더 한 일을 당한 사람도 많으니 지금 처한 상황에 너무 비관적이지 않았으면 해.”
비록 시부모님을 만날 것인지 아닌지 대답을 주신 건 아니지만 뭔가 와닿는 것이 있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말고 시부모님에 대한 복잡한 감정/불편한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남편을 위해 나가기로 결국 생각을 고쳐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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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약속 전날 시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못나오시겠다고 문자가 왔다. 비장한(?) 각오를 했던 나는 약간 김이 빠지는 느낌이었지만 어쨌든 남편을 위해 시도는 해보았다고 말할 수는 있었다.
.............................................................................................시어머니와 나,,,이제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시아버지는 외람된 말로 시어머니 엉덩이에 깔려 사셔서 아무런 발언/기득권도 없으시다)
고부 관계가 아니라면 나는 분명히 이 관계를 아주 말끔히 끊었을 것이다. 사모님도 연세가 70이 넘으셨고 30년이 넘게 은사님과 사셨지만 아직도 은사님 전부인과 따님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감정적이 되셔서 목소리가 커지신다. 아마 아직도 그만큼 상처가 되고 마음에 쌓이신 것이있으시리라.
문득 시모와 계모 중 어느 ‘어머니’가 더 가까워지기 어려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둘 다 선뜻 가까워지기 어려운 관계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라서, 게다가 갑(甲)의 위치라서 가까워지기 어렵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왔지만 그 무엇보다 열리지 않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시모나 계모로 그리고 며느리나 의붓자식으로 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