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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의 봄방학과 성장

길고도 짧았던 큰아이의 봄방학이 끝났다...(3월 말경)
(그리고 이 글을 다 쓰는 데 석 달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휴)

고작 일주일이었는데도 네 살과 한 살박이 두 아이를 오롯이 나 혼자 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요즘 급격히 체중이 늘어난 둘째를 항상 안고 다닌 탓인지 며칠 전부터 오른쪽 어깨에 무리가 왔고 결국 오십견 증세가 와서 오른팔을 들거나 쓸 수 없게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른팔이 아파 계속 왼쪽 가슴만으로 수유를 했더니 오른쪽 가슴이 바위 덩어리처럼 딱딱해지고 아파오더니 유선염 증상이 왔다. 손이 하나 더 있어도 모자란 판에 이런 몸이라니!!! 정말이지 어깨와 가슴이 아파서도 울고 싶었지만 더 기가 막혔던 것은 봄방학을 기점으로 가뭄에 콩 나듯 하는 번역일까지 들어온 것이다. 이렇게 낮에는 두 아이 보느라 못 쉬고 밤에는 번역일 하느라 수면 시간을 줄여가며 일하는 극기훈련 같은 봄방학이 시작되었다.

첫날은 겨울방학 때와 마찬가지로 체력소모를 시키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이나 놀이터에 갔는데 지난 번과 달리 열 배는 힘들었다. 걸음마를 시작한 딸아이가 앞으로 쏠리듯 뛰기 시작한 것이다. 뒤뚱거리면서 벤치 모서리나 여기저기로 넘어질 듯 뛰어다니는 딸애를 보면서도 높은 철봉에 매달려 떨어질 것 같은 아들 녀석을 잡는다고 뛰고 구르느라 무릎은 후들거리고 팔은 찢어질 듯 욱신거렸다.
무엇보다 애들이 넘어지거나 떨어질라 심장이 뚝 떨어지고 쫄아드는 느낌에 온 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혼이 털려버렸다. 결국 애들이 아니라 내 심신이 아주 소모 되어버렸다.
도저히 점심을 만들 기력이 없어(아마 기력이 남았어도)월남 국수를 사주었는데 아들은 새우와 춘권이 든 분짜를, 딸은 포를 아주 맛있게 먹어줘서 참 흐뭇했다.(역시 애들은 면이 최고다)
집에 돌아와서도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을 위해 풀장에서 놀게 했지만 딸아이가 물속으로 그대로 꽈당하고 계속 미끄러져서 잡아주느라 허리가 나가버렸다. 겨우 첫날이었는데도 남편이 집에 왔을 때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아이를 재우다 나도 잠이 들어버렸다. (양치질도 안 한채)
둘째날은 모험을 했다. 아들레미가 공원도 놀이터도 가기 싫다고 한 것이다. 성하지 않은 오른팔로 두 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 아들은 그저 버스를 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두아이와 버스을 타고 20 분 거리의 해양관으로 향했다. 버스가 정확히 몇 분에 오는 줄 알길이 없어 딸애는 앞으로, 배낭 가방은 뒤로 매고 유모차를 끌고 아들과 버스 정류장에 않아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렸다.
고맙게도 아이들이 지루함으로 난리치기 직전에 버스가 와주었다. 버스는 봄방학이라 그런지 관광객과 아이들로 꽉 찼지만 친절하게도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백인 부부가 자리를 양보해주어 앉아갈 수 있었다. 버스가 덜컹 거릴 때마다 넘어지려는 유모차를 잡고 우는 딸아이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큰아이는 처음 타보는 버스가 신기했던지 가는 내내 창밖을 보느라 조용했다.
해양관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람들로 복작복작 거렸고 너무 더웠다. 모두들 더운지 아이스크림 판매대가 가장 붐볐다. 우리도 아이스크림을 사는데 30분이 넘게 기다려야 했다. 아이들 점심을 집에서 먹이고 온 것은 정말 잘 한 일이었다. (더운데 배고프고 짜증내는 아이들과 줄 서는 것은 상상만 해도 감당이 안 된다)
30분이나 걸렸지만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큰아이는 테이블을 잡고 앉아 끈기있게 기다려주었다.
사람이 하도 많아서 사람이 드문 곳을 찾다가 돌고래 쇼가 끝난 제일 윗쪽 관객석에 앉아 먹는데 세상에,,,좀 떨어진 바다에서 향유고래가 점프를 하는 게 보였다. 너무나 신기했다. 자연속에서 보는 고래라니...남편에게 바로 문자를 보내니 자기도 본 적이 없다고, 부럽다고 했다. (남편도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여러모로)
하이라이트는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서였다. 버스 좌석에 앉자마자 큰아이의 눈이 거스츠름해졌다. 그러더니 곧 눈이 감기고 본격적으로 졸기 시작했다.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거리면서도 중심을 잡고 자는 모양이 영락없는 일본 지하철의 샐러리맨이었다. 딸아이도 칭얼거리기 시작하더니 젖을 찾아 가슴으로 파고 들었다. 한 손으론 큰아이를 붙잡고 한손으론 수유 가리개(?)를 잡고 다리론 유모차를 지지하며 어찌어찌 버텼는데 내릴 역이 가까워져 큰애를 깨워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흔들어대도 깨지 않는 아이 때문에 정말 난감했는데 우연히도 다행이도 아침에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해 줬던 백인 부부가 같은 버스에 타고 있었고 그 부부가 큰애를 안아 유모차와 같이 내려다 주었다. 버스 기사도 우리가 잘 내리도록 기다려줘서 정말 고마웠다. 결국 버스 정류장에서 남편에게 SOS를 보냈고 남편이 조퇴를 해서 둘째날의 모험은 막을 내렸다.
셋째날은 온 몸을 두드려맞은 통증과 함께 몸이 천근만근인 느낌으로 겨우 일어났다. 어제 작은 애를 업은 채 큰애를 안아 올렸다 내렸다 한 것에 무리가 온 것이다. 몸살 기운이었다. 이제는 왼쪽팔 마저 올릴라치면 전기가 흐르듯 저려왔다. 심각하게 남편한테 월차를 쓰면 안 되겠냐고 물었지만 아침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미팅이 있다며 대신 오후 반차를 쓰겠다고 했다.
남편 출근 후 찜찜했지만 결국 큰애에게 티비를 보여주기로 했다. 우리집은 정규 티비는 없고 넷플릭스나 아마존 프라임만 있어서 좋아하는 티비 쇼를 원없이 볼 수 있는데 요즘 큰 아이가 푹 빠져있는 레고 닌자고를 보여준다니 두말 없이 얌전히 소파에 앉았다.
나도 몸이 이런데다 작은애가 아침에 잘 때 같이 누워 쉴 수 있으니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한 20-30분 지났을까. 거실에 아무도 없이 큰애 혼자 무제한 티비 시청을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려 나와보니 이미 일은 일어나 있었다.
티비에 너무 빠져있다보니 소파에 앉은 채로 오줌을 싼 것이다. 실은 지난 주말에도 티비를 보며 오줌을 참다 참다 화장실에 가는 도중에 실수를 해서 야단을 쳤는데 오늘은 옆에 아무도 없으니 그 자리에 실수를 해버린 것이다. 오줌에 젖은 소파를 본 순간 폭발해버렸다. 아이 엉덩이에 내 손가락 자국이 날 정도로 후려쳤다. 때리는데 내 어깨가 어찌나 욱씬거리는 지,,,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다. 당연히 아이는 엉엉 울고 나는 어깨가 너무 아픈 동시에 후회, 죄책감, 허탈함 등 복잡한 심정이 되어 눈물이 나왔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방학인데 운전을 못하는 엄마때문에 어디에도 못 가고 집에서 티비나 봐야하다니. 곧 아이에게 때린 것을 사과하고 꼭 안아주며 오줌 싼 건 잘못 한게 아니지만 꼭 화장실에서 눠야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아이는 금새 언제 울었느냐는 듯 웃으며 뛰어다녔고 점심 후 남편이 돌아와 소파를 닦고 말린다고 오후는 지나갔다.
네째날도 여전히 내 양팔은 뜨거운 물에 담근 듯 화끈거리고 저렸다. 오전은 두 아이와 티비로 떼우고(?) 점심후 딸아이의 체조 교실에서 여는 무료 연습시간 겸 노는 교실에 두 아이를 데려가 한 시간 동안 놀렸다. 두아이가 서로 손을 잡거나 깔깔 웃어대며 잘 노는 것을 보니 참 행복했다. 집에 오는 길에 셋이서 빙수를 사 먹는데 큰 아이가 “엄마, 난 정말 행운아예요. 이렇게 빙수도 먹고 체조 교실에도 갈 수 있으니까요” 하고 말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말 그대로 찬밥 신세인 큰 애가 그렇게 말해주니 아주 미안해졌다. 어쩌면 정신적으로 성장한 것을 내가 미처 몰랐던 걸까. 매일 부대끼며 지내니 큰아이의 변화가 한 눈에 들어왔다.

그 후 남편이 월차를 내고 어찌어찌 일주일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석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이 시점에도 내 오른팔을 완전히 들 수가 없고 아직도 아프다. 사십견이 무섭다는 걸, 드디어 내 (늙은) 나이와 저질 체력을 뼈저리게 직시했다. 그래도 육아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