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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에서의 유배 생활(혹은 독박 육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소위 파라다이스라고 불린다. 파라다이스? 낙원? 그러나 나에게 '낙원'이란 단어는 참 낯설다.  단지 '낙원 상가' '낙원 갈비' '낙원 회관'등 무슨 빌딩이나 식당에 붙는 좀 촌스러운 이름 같다고나 할까. 

9 개월 된 둘째를 업고 매일 아침마다 산책을 가는 공원은 해변가와 연결되어 있어 항상 관광객들로 붐빈다. 특히 하얀 드레스에 꽃다발을 들고 캐주얼 정장에 우크렐레를 든 남녀의 신혼 여행 사진 촬영은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볼 수 있다. 매일 다른 커플들이 똑같은 의상과 똑같은 포즈로 똑같은 나무와 해변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사진사의 멘트도 한결같다. '뽀뽀하시고!' '허리 당기시고!' '서로를 더 가까이 마주보시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 커플들은 하나같이 행복해 보인다. 다들 입꼬리가 쭉 올라가 있고 먼발치 벤치에 앉아있는 나와 아이에게도 활짝 웃어준다. 

오늘도 어제 보았던 똑같은 사진사에 어제 커플들이 입었던 의상을 입은 새 커플이 보였다.

''좋겠다!''

하얀꽃으로 장식된 헤어 밴드를 고쳐 쓰며 '신부님'이 '신랑님'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집이 가까운가 봐, 저렇게 아기랑 걸어서 산책도 오고.''

내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투명인간마냥 구경하던 내가 보이다니!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파란색 꽃무늬 몸빼 바지에 목이 가슴께까지 늘어난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사람들 구경하던 내 모습이 여기 사는 주민처럼 보였나 보다. 

물론 여기에 살고는 있지만 이제 겨우 내가 지도의 어디쯤 사는지 파악한 정도다. 차도 없을 뿐더러 유명한 스폿도 가본적이 없다. 무엇보다 나의 행동 반경은 5 분거리에 있는 이 공원과 10 분 거리의 슈퍼마켓뿐이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못 갈 것도 없다. 버스를 타고서라도 갈 수 있다. 하지만 겨울의 우중충하고 추운 날씨와 육각형 눈송이를 사랑하는 나에게 너무나 눈부시고 따가울 정도로 이글거리는 이 곳 태양과 사시사철 더운 기후는 나를 집안으로 내몬다. 나는 집순이에다 스포츠도 일체 못/안 하고 스칸디나비아 같은 곳의 침엽수림 자연을 동경하고 좋아해 정반대인 여기에 별로 관심이 없다. 워낙 바깥 구경을 좋아하는 우리 둘째가 아니라면 아마 공원이나 해변도 거의 안 갈 것이다. 

나는 낙원으로 유배를 온 것이다.

여기는 남편이 태어나 자란 고향이다. 그리고 남편의 가족과 온 친척이 살고 있기에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여기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육아는 오롯이 엄마인 나 혼자의 몫이기에 첫째때와 마찬가지로 둘째와 나만의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내가 좋아하는 겨울이 있는 곳에서 혼자 아이를 보는 것과 낙원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혼자 아이를 보는 것 중 어느 편이 더 나을까?

어리석은 질문이란 걸 안다. 하지만 이왕 (남들은 오고 싶어 야단인) 낙원에 사는 김에 나한테도 낙원이 될 뭔가를 조금씩이라도 찾는게 더욱 현실적일 것이다. 하찮은 것이라도 하루에 한 개, 아니 적어도 일주일에 하나 정도는 이 곳에 와서 좋아진 것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들이 독립할 나이가 되면 어쩌면 나도 낙원의 주민이 되어 서핑 보드 위에서 요가를 하고 있진 않을까?( 요가는 무슨, 할매가 되어 요강이나 안 찾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