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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적”이라는 말

십 몇년전까지 나는 말일성도/몰몬교 교인이었다. 고등학교때 교문앞에서 만난 금발의 선교사와 긴머리의 한국인 선교사의 영어를 가르쳐 주겠다는 말이 발단이었다. 그리고 대학도 몰몬교로 유명한 유타에서 다니며 교회를 갔고, 일본에 가서도 몰몬교회를 다녔다. 거기서 만난 사람이 안드레아였다.안드레아는 콜롬비아에서 태어나 세 살때 텍사스에 온 미국인이었는데 일본인 남편과 결혼으로 일본으로 온 케이스였다. 내가 처음 안드레아를 만났을 때 그녀는 일본에 산 지 거의 10년이 다 되었지만 영어선생이라는 직업때문인지 일본어를 거의 못했다. 그녀가 아플 때 남편이 바쁘면 내가 데리고 가서 통역을 해주어야 했을 정도로 일본어가 더뎠다. 그러던 그녀에게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가 왔다. 당시 4살인가 5이었던 그녀의 딸 앞에서 술이나 담배를 하며 언어폭력을 일삼는 남편때문이었다. 나한테는 안드레아의 남편인 시게미츠 상은 참으로 재미있고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술만 마시면 안드레아에게 “순종을 안 한다”” 남편 말을 안 듣는다”는 등, 격한 말을 아이 앞에서 서슴없이 해댔다. 급기야 내 앞에서도 그런 말을 해댔고 나는 시게미츠 상이 참 꼴보기 싫어졌다. 안드레아는 딸 에리스를 위해 참고 견디고 있었지만 때로는 말없이 우는 모습을 보였고 속으로는 한없이 힘들어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안드레아가 오사카에서 좀 떨어진 나라현에 있는 교회에 가자고 부탁해왔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어서 지도를 집에 있는 컴퓨터로 출력해야 했고 2 시간이 훨씬 넘는 곳이었다. 왜 그렇게 먼데까지 가야할까 의아했는데 그 교회에는 높은 신권을 가진 장로님이 있어서였다. 도착하자 안드레아는 그 장로님께 지금 걸린 감기와 함께 마음의 병도 고쳐달라고 부탁했다. 그 장로님은 그저 두 손을 안드레아의 머리위에 두고 큰 목소리로 기도를 하셨는데 나한테는 그 광경이 너무나 생경하고 광신적이라 경직됐다. ‘아프면 병원을 가야지...’라는 생각만 머리속을 맴돌았다. 아마 나는 그때 내가 교회에 다닐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 안드레아와는 연락을 하고 지냈지만 나는 점점 교회에서 멀어졌고 급기야 발을 끊었다.
내 여동생이 심한 축농증과 기침으로 숨 쉬는 게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어서 빨리 수술이나 치료도 안 받고, 동생 건강을 신경도 안 써주는 동생 남편이 참 섭섭했는데 알고보니 여동생이 치료를 안 받으려 한 거였다. 이제껏 남편이 수술 받기 전에 한약부터 먹어보자했다는 말을 들어와서 동생 남편의 욕이란 욕은 엄청했었는데 정작 수술을 안 하려했던 것은 내동생이었다. 너무 화가 나서 정말 왜 그러냐니까 기어가는 목소리로 “일단 기도를 해서, 기도로 낫고 싶어서...”라고 했다. 순간 머리가 텅 비는 느낌이었다. 어이가 없어 왜 이제껏 남편 핑계댔냐니까 “언니가 날 광신적이다 뭐다 그럴까봐,,”라고 했다. 근데 순간 그게 더 화가 났다. 지금껏 내 동생의 맹목적인 종교 찬양으로 우리 가족들은 많이 불편하고 질색했지만 강하게 부정하거나 거부하지는 않았다. 차라리 당당히 그렇다고 말했으면 좀 질려했어도 화는 안 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동생도 인간이기에 언니가 자신을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
나와 우리 가족에겐 말 그대로 신에게 미친 광신적인 여동생이 막상 가족, 주위사람들에게 그렇게 불리는 게 본인도 꺼려진다는 게 참 아이러니컬하다. 하지만 실제로 광신적이라해도 나는 여동생을 사랑하며 힘들때도 기쁠때도 항상 같이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