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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워질 수 없는 시어머니

글을 쓰고 몇 번을 삭제하고 다시 썼는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여기에 쓰는 글은 나를 위하여 쓰고 싶었는데 이번에 쓴 글은 정말이지 감정의 쓰레기 같은 내용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이 감정이 글로 써내려가 풀어지지 않는 한 더 이상 글을 못 쓸 것 같다.

땡스기빙을 기점으로 시어머니와 심하게 틀어졌다. 그렇다고 나랑 직접 다툰 것도 아니다. 시어머니는 모든 불만을 남편에게 퍼붙는다. 나한테 불만이 있어도, 내가 바로 앞에 있어도 갈구는 것은 남편이다. 난 그저 투명인간이다. 그러면서 항상 나한테 하시는 말씀이 “내가 아들이 하나뿐이라 널 정말 딸이라 여겼는데...”하신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것도 세 네 번 똑같은 내용을 계속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시어머니를 매일 대하며 내 정신과 인내에 한계를 느꼈다. 그리고 시어머니한테서 극한 스트레스를 느끼는 남편과 내 사이도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곳에 온 이유가 사라지고 하루하루가 포로 수용소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심정이 되었다. 여기에 온 이유는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조부모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그렇지만 조부모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기 이전에 나는 시어머니 눈치 보느라,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 보느라 너무나도 피곤하여 첫째 아이에게 짜증으로 일관했다. 지금도 그것이 너무 마음에 걸리고 첫째한테 죄스런 기분이다.
“애들은 이렇게 저렇게 키워야 한다”라든지 “애들 음식에는 꼭 고기를 넣어야 한다”라며 무엇 하나에도 빠지지 않는 시어머니의 간섭이 내가 더이상 좋은 엄마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시어머니의 로보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시어머니는 한 번 화가 나면 나뿐만 아니라 첫째 아이마져 무시했고 며칠을 가는 성격이었기에 시어머니의 심기를 해칠까봐 하시는 말씀 곧이 곧대로 들으며 살얼음 걷는 듯한 생활을 했다. 정말이지 마음이 너무 괴롭고 힘들때는 그냥 아이를 업고 나가 “엄마, 엄마” 부르며 울며 동네를 돌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요리하다 그 칼로 내 심장을 찔러 죽고 싶었으니까.
한 살도 안 된 둘째에게도 따스하고 좋은 말보다는 힘들다고 절규하며 울면서 한 말이 많은 것 같아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그러다 죽기 아니면 살기를 결심하고 우여곡절 분가를 했다. 이제 두 달이 되었다. 땡스기빙 전까지는 반드시 주말 뿐만 아니라 시간이 되는 한 주일날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인사하러 다녔다. 그런데 땡스기빙에 사단이 났다. 친척이 모인 자리에서 시큰아버지가(시아버지의 형님) 나를 시큰어머니와 딸인 여자 사촌이랑 여행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셨다, 물론 비용도 다 대주시겠다고 하셨다. 피해망상인 시어머니는 자신만 모르게 일을 진행 시킨 것은 자신을 무시하고 배신한 거라며 남편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 땡스기빙 식사때는 아무 소리 없다가 다음 날 전화로 난리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제안을 받아들인 우리(정확히는 나)가 뻔뻔하다며 여행비용을 시큰아버지한테 당장 갚으라고 야단이셨다. 그리고는 이제껏 내주셨던 전화세를 끊어버리셨고 아이들 사진도 벽에서 다 뜯어 내려서 가지고 가라하셨다. (지난 번에 화가 났을 때는 첫째의 장난감을 아이 눈 앞에서 던지고 자전거를 버리셨다.) 화가 나면 항상 하시는 패턴이기에 이번에도 놀라울 게 없었다. 다만 내 사진도 아니고 왜 손자 손주들 사진에 분풀이 하시는 지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들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하신다.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걸까? 이제 나는 시어머니 목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벌렁벌렁거린다. 시어머니가 모는 똑같은 차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과 어머니는 영원히 가족이야”라고 말해두었다. 지금 당장은 시어머니를 사진이라도 보기 싫지만 그건 내가 느끼는 바이고 남편은 아무래도 자신의 부모라 나랑 다를 것이다.

동서고금하고 고부갈등은 반드시 존재하며 아주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 남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손자 손주 바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당신의 기분을 제일로 여기시는 시어머니에게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는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