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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의 크리스마스/생일 생일 저녁, 미역국을 끓이는데 눈물이 났다. 국 간을 보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와 국물과 엉겨 더 짭쪼름했다. 이유없는 서러움과 허전함에 감정이 더 북받쳐 올라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기를 안고 부엌에 들어온 남편이 놀라 물었다. “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내가 뭘 잘 못 했어?” 남편 때문이 아니라고 했지만 남편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았다. 제발 이유를 말해달라는 남편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며 남편을 등지고 돌아섰다. 왜 그랬을까? 남편 말대로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서? 남편이 내 생일(크리스마스)에 날 두고 시댁에 다녀와서? 아니면 출산한지 10개월이 넘은 이 마당에 산후우울증이 와서? 모르겠다, 내 마음인데도 확실히 모르겠다. 위에 말한 것들이 모두 이유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 더보기
일본에서 만난 사람들-U상 저녁을 먹고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으며 아이들과 놀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이 없는데 하며 의아해 보니 일본에서 온 전화였다. U상이었다. 올해 9월 일본 간사이에서 큰 지진이 났을 때도 U상한테서 대피하라는 문자와 함께 전화가 울렸었다. 14 년 일본 생활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U상은 그 중 오래 알고 지내기도 했지만 어떤 의미로 잊혀지지 않는 사람중의 한 명이다. U상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아나운서 같은 분위기였다. 이지적인 분위기의 여성이었다. 어깨 위에 닿을락 말락한 정도의 길이에 자연스러운 웨이브를 한 헤어스타일. 연하늘색의 원피스에 윤기가 흐르고 유난히 탱탱한 피부결을 가지고 있었다. 립스틱을 바르고 마스카라까지 했지만 아주 세련되고 내추럴한 화장을 하고 있었다... 더보기
아들의 첫번째 크리스마스 발표회 큰애가 유아원을 다닌지 반 년이 되었다. 작년 일본에서 여기로 이주할 때만 해도 일본말과 한국말이 뒤섞여 잘 알아듣기가 힘들었는데 유아원에 다니게 된 이후로는 몇 몇 한국말 일본말 단어 이외에는 영어만 하게 되었고한국말을 해도 대답은 영어만을 고집한다. 처음 석 달은 매일 아침 내 바지가 찢어져라 붙잡고 울기에 정말 보내야 하나 하고 고민할 정도였다. 아침마다 너무 마음이 안 좋고 아이도 힘들어하니 내가 무슨 짓을 하나 싶었다. 한번은 부모가 아이를 관찰할 수 있는 날이 있어 갔더니 애가 왜 그렇게 가기 싫어하는 지 정말 이해가 갔다. 말도 다르고 (게다가 숫자와 요일을 영어와 더불어 스페인어로까지 가르치고 있었다!) 모든 루틴에 낯설은 우리 아이는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이었다. 스무 명 남짓 아이들 속.. 더보기
크리스마스와 현정이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훌쩍 다가왔다. 내 생일은 크리스마스이다. 하지만 서른이 넘어서부터는 크리스마스도 내 생일도 그다지 기다려지지도, 감흥도 없어졌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어렸을 때는 일년중 제일 기다려지는 날이 내 생일이자 크리스마스였다. 비록 생일 겸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더라도 온 세상이 즐거워하는 그 날이 참으로 좋았다. 그런데 그런 특별한 날이 제일 비참한 날이 된 적이 있다. 현정이도 크리스마스가 생일이라고 했다. 같은 반이었던 현정이는 집이 같은 방향이라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집에서 놀다가곤 했다. 현정이의 집안 형편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셨는지 안 계셨고 어머니께서는 노상에서 과일을 파셨다. 현정이 어머니께서는 까만 동그란 테에 두꺼운 렌즈의.. 더보기
아가 어서 나아라 작년에는 크리스마스에도 너무 더워 에어컨을 켜야 했는데 올해는 자다가 추워서 이불을 찾을 정도로 쌀쌀해졌다. 하지만 낮동안은 땀이 날 정도로 더워 일교차가 심하다. 언이의 유치원에도 아이들이 많이 아픈지 급기야 언이 반 선생님까지 독감에 걸려 학교에 못 나왔다고 한다. 만약아이가 열이 나고 누렁코를 흘리면 학교에 보내지 말라고 몇 번이나 메일이 왔다. 심지어 아픈 애를 등교 시키면 다시 데려가게 하겠다고도 연락이 왔다. 그런데 언이가 아닌 둘째가 열이 심하게 나기 시작했고 누렁코에 침까지 줄줄 흘리며 칭얼댔다. 안 그래도 이앓이 때문에 잠을 잘 못 자고 있었는데 코가 막히니 젖도 잘 못 빨게 되어 더더욱 힘든 모양이었다. 누우면 코가 더 막히는지 자지러지 듯 울어댔다. 눕혀서 재울 수가 없게 되었다. 나.. 더보기
새로운 하루 아기가 잘 때 틈틈이 쓴 글을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쉬지도 않고 구구절절 쓴 내 글들이 실수로 누른 클릭 하나로 다 날라가버리니 다시 쓰고 싶은 마음도 힘도 사라져버렸다. 힘이 빠져 그냥 그대로 잠을 청했다. 하지만 잘 된 건지도 모르겠다. 지난 이틀간은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어서 다시 보면 기분이 더 가라앉는 느낌이 들 지도 모른다. 몸은 여전히 피곤하지만 오늘은 다행이도 우울한 기분도 덜 해서 되도록이면 밝은 생각으로 쓰고 싶다. 오늘 언이는 너무나 기분이 좋은 지(아님 힘이 넘치는 지)아침부터 의자에서 뛰어내리거나 큰 소리로 노래를 하거나 대답하는 등 야단도 아니었다. 둘째도 덩달아 벽을 잡고 까치발로 일어서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캭캭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귀여운 두 아이, 이렇게 사랑스러운 애들을 .. 더보기
하루는 더디지만 세월은 빨리 간다 육아라는 게 그렇다. 하루 하루는 그렇게 더딜수가 없는데 지나고 보면 어떻게 뭘 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빨리 지나가버린다. 분명 첫째 아이때 다 경험했을 텐데 이맘때 어땠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다만 처음 한 말이 뭐였으며, 몇 개월에 첫니가 났는지, 걸음마를 시작했는지 정도만 기억날 뿐 다른 것들은 기억 상실증에 걸렸었던 듯 전혀 생각이 안 난다. 둘째가 이앓이를 시작했는지 요 며칠간 잠을 못 자고 거의 한 시간 간격으로 깨며 칭얼거린다. 잠 못 자는 것엔 어느 정도 이력이 나있다고 생각했는데 낮에 아이를 보는 도중 꾸벅꾸벅 졸다 앞으로 쏠려 넘어질 뻔 했다. 너무 고단해서 짜증같은 감정이 올라오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이 애교쟁이가 내 무릎에 기어오르며 찡긋 웃어주는데 나도 허~하고 웃고말았다... 더보기
나를 알아가는 길 아이를 낳고 생각의 끈을 놓아버렸고 또 아이를 낳고 감정 여과를 멈춰버렸다.화가 나면 버럭버럭 폭발하고 우울하면 엉엉 소리내어 울고 그야말로 나도 아이처럼 감정의 억제 불능인 채로 살았다. 특히 둘째 아이가 생겼을 때 계획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시댁으로 이사해야 하는 일 등 여러가지가 겹쳐서 첫째에게 막 대했다. 지금도 엄마가 아니라 악마같던 내 모습이 떠올라 숨이 막힐 듯 하다. 미안하다, 언아, 정말 미안해. 나이와 상관없다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불혹을 넘기고도 나를 잘 모르는 내 자신이 참 한심하고 난감하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 자신을 잘 모른다는 것도 그렇지만 이제와서 어떻게 찾으라고? 그렇지만 세상에는 이런 질문을 아예 생각치도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