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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요산 멍자요수(仁者樂山멍者樂水) 어렸을 때 살던 동네는 산이 바로 뒤에 있어 주말이 되면 가족이서 등산을 다녔다. 산길 가장자리에 흘러 내려오는 개울이나 계곡에서 가재나 게를 잡는 것도 재미있었고 이빨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약수물로 목을 축이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였다. 여름에는 사촌들과 캠핑을 하며 매미나 하늘소를 잡으러 이 나무 저 나무 찾아다니며 신나게 놀았다. 산은 놀이터와 다름없었고 자연스레 산이 좋았다. 이후에 중학교 한문 시간에 사자성어 ‘인자요산’을 배우며 나는 ‘인자하고 어진 사람’ 이라고(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바다가 좋다. 참으로 좋다. 지금 사는 집에 이사한 후로 매일 빠짐없이 하는 일 중에 하나가 아이와 산책 겸 집에서 가까운 해변에 나가는 것이다. 자연의 치유력이라고 할까. 시원하게 펼쳐진 파란 .. 더보기
나의 여동생 여동생한테서 소포가 왔다. 110센티미터인 큰애가 선 채로 두 명이나 들어갈 정도로 큰 소포였다. 각종 건어물, 홍삼액, 큰애와 아기 과자, 여러가지 장난감, 내 화장품, 아이들 옷가지 그리고 큰애와 작은애의 색동 저고리가 들어 있었다. 아쉽게도 여러종류 보낸 (남편이 좋아하는) 라면은 세관에 걸려 파기되었다는 서류도 들어있었다(미국은 각종 육류가 들어간 식품은 반입이 안 된다) 그리고 익숙한 동생의 글씨가 적힌 카드가 보였다. 내 글씨는 지렁이처럼 꼬불거리고 크기도 일률적이지 못한 것에 비해 여동생은 촘촘하고 또박또박 쓴 정사각형의 귀여운 글씨체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보고싶은 조카들에게’ 그리고 나에게는 ‘사랑하는 똥땡언냐’라고 시작하는 글로 써보낸 카드는 무엇보다 반가왔다. 여동생도 막 돌을 지난 .. 더보기
딸아이가 걸었다 2019년 1월7일 월요일, 딸아이가 드디어 걸음마를 시작했다. 지난 주부터 아무것도 잡지 않고도 스스로 꽤 오랫동안 서있는다고 생각했는데 오늘(7일) 큰애가 춤을 추는 것을 보던 둘째가 냅다 두 세 걸음정도 걸었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무너지듯, 넘어지듯 몇 발짝을 띄워냈다. 남편과 나는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너무 크게 소리를 지른 탓인지 아이는 깜짝 놀라 울먹거렸다. 큰애는 돌이 지나고 13개월이 되어 겨우 걸었는데 둘째는11개월에 걷기 시작했다. 눈치도 훨씬 빠르다. 아직 한 살이 채 안 되었지만 내가 무표정이거나 화가 난 걸 보면 그 귀여운 보조개가 쏙 들어가는 웃음을 지어준다. 딸아이가 씽긋 웃어주면 나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도 버터처럼 녹아내려 무장해제가 된다. 큰애와 비교하면 여러모로 .. 더보기
뜻깊었던 이주일 드디어 큰애의 이주일 겨울방학이 끝났다. 넘쳐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어 시종 돌고래마냥 점프를 해대는 큰애와 여기저기 기어다니기 시작한 젖먹이를오롯이 나 혼자 이주일 동안 봐야한다는 것에 처음에는 적지않은 스트레스를 느꼈다. 하지만 ‘내 애를 내가 못 보면 누가 볼 수 있으랴’ 라는 각오로 첫째날을 맞이했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의 ‘체력 소모’에 중점을 두고 이등병 훈련시키듯 무조건 달리기를 시켰다. 해변에 데려가서도 달리기, 놀이터에 가서도 달리기, 그리고 어디든지 걸어서 데려갔다. 둘째도 덩달아 풀밭에서도 기고 운동장에서도 기어다녔다. 집에 돌아오면 밥을 왕창 먹이고 놀이겸 목욕을 시켰다. 크리스마스와 새해에는 남편이 쉬어서 그나마 수월했고주말에는 동물원과 수족관으로 ‘뺑뺑이’를 돌렸더니 이주일이 .. 더보기
2018년의 크리스마스/생일 생일 저녁, 미역국을 끓이는데 눈물이 났다. 국 간을 보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와 국물과 엉겨 더 짭쪼름했다. 이유없는 서러움과 허전함에 감정이 더 북받쳐 올라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기를 안고 부엌에 들어온 남편이 놀라 물었다. “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내가 뭘 잘 못 했어?” 남편 때문이 아니라고 했지만 남편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았다. 제발 이유를 말해달라는 남편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며 남편을 등지고 돌아섰다. 왜 그랬을까? 남편 말대로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서? 남편이 내 생일(크리스마스)에 날 두고 시댁에 다녀와서? 아니면 출산한지 10개월이 넘은 이 마당에 산후우울증이 와서? 모르겠다, 내 마음인데도 확실히 모르겠다. 위에 말한 것들이 모두 이유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 더보기
일본에서 만난 사람들-U상 저녁을 먹고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으며 아이들과 놀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이 없는데 하며 의아해 보니 일본에서 온 전화였다. U상이었다. 올해 9월 일본 간사이에서 큰 지진이 났을 때도 U상한테서 대피하라는 문자와 함께 전화가 울렸었다. 14 년 일본 생활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U상은 그 중 오래 알고 지내기도 했지만 어떤 의미로 잊혀지지 않는 사람중의 한 명이다. U상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아나운서 같은 분위기였다. 이지적인 분위기의 여성이었다. 어깨 위에 닿을락 말락한 정도의 길이에 자연스러운 웨이브를 한 헤어스타일. 연하늘색의 원피스에 윤기가 흐르고 유난히 탱탱한 피부결을 가지고 있었다. 립스틱을 바르고 마스카라까지 했지만 아주 세련되고 내추럴한 화장을 하고 있었다... 더보기
아들의 첫번째 크리스마스 발표회 큰애가 유아원을 다닌지 반 년이 되었다. 작년 일본에서 여기로 이주할 때만 해도 일본말과 한국말이 뒤섞여 잘 알아듣기가 힘들었는데 유아원에 다니게 된 이후로는 몇 몇 한국말 일본말 단어 이외에는 영어만 하게 되었고한국말을 해도 대답은 영어만을 고집한다. 처음 석 달은 매일 아침 내 바지가 찢어져라 붙잡고 울기에 정말 보내야 하나 하고 고민할 정도였다. 아침마다 너무 마음이 안 좋고 아이도 힘들어하니 내가 무슨 짓을 하나 싶었다. 한번은 부모가 아이를 관찰할 수 있는 날이 있어 갔더니 애가 왜 그렇게 가기 싫어하는 지 정말 이해가 갔다. 말도 다르고 (게다가 숫자와 요일을 영어와 더불어 스페인어로까지 가르치고 있었다!) 모든 루틴에 낯설은 우리 아이는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이었다. 스무 명 남짓 아이들 속.. 더보기
크리스마스와 현정이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훌쩍 다가왔다. 내 생일은 크리스마스이다. 하지만 서른이 넘어서부터는 크리스마스도 내 생일도 그다지 기다려지지도, 감흥도 없어졌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어렸을 때는 일년중 제일 기다려지는 날이 내 생일이자 크리스마스였다. 비록 생일 겸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더라도 온 세상이 즐거워하는 그 날이 참으로 좋았다. 그런데 그런 특별한 날이 제일 비참한 날이 된 적이 있다. 현정이도 크리스마스가 생일이라고 했다. 같은 반이었던 현정이는 집이 같은 방향이라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집에서 놀다가곤 했다. 현정이의 집안 형편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셨는지 안 계셨고 어머니께서는 노상에서 과일을 파셨다. 현정이 어머니께서는 까만 동그란 테에 두꺼운 렌즈의.. 더보기